모슬포

정군칠

모슬포에 부는 바람은 날마다 날을 세우더라
밤새 산자락을 에돌던 바람이
마을어귀에서 한숨 돌릴 때
슬레이트 낡은 집들은 지붕의 골마다
파도를 가두어 놓더라
사람들의 눈가에 번진 물기들이
시계탑 아래 좌판으로 모여들어
고무대야 안은 항시 푸르게 일렁이더라
눈 부릎뜬 날것들이 바람을 맞더라

모슬포의 길들은 모두 굽어있더라
백조일손지묘 지나 입도 2대조 내 할아비
그 무지렁이 생이 지나간 솔밭길도 굽어 있더라
휘어진 솔가지만이 산의 상처로 파인
암굴을 저 혼자 지키고 있더라
섬이 하나 생겨나더라
막막한 세월이 참 무심히도 흘렀다더라

날마다 나를 세우는 바람이 한겨울에도 바람이 한겨울에도 피마른  자리 찾아
산자고를 피우더라 모슬포의 길들은 모두
굽어있더라 그래야 시절마다 다르게 불어오는
바람을 껴안을 수 있다더라 그 길에서
그 바랑을 맞으며 내 등도 서서히
굽어가더라